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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사각

시시하다고 비웃어도 괜찮아요-13-







1. '블로그에 이런저런 말을 잔뜩 써놓자.'
뭐든 써보자, 라고 생각해 놓고 다 까먹었다.
아, 인생.





역시 블로그 같은 것은 아무나 할짓 아냐.




블로그 앞에 '파워'라는 이름이 붙는건 다 이유가 있던거야.



 

2. 추석 전에 시켜놓은 가을 자켓이
배송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배송 완료 '본인'이라고 찍혀 있었다.

어안이 벙벙하여


판매자(운송장 번호를 알려주며 걱정했다),
택배기사(하루종일 전화기를 꺼 놓고 있었다),
택배회사(추석 연휴라고 업무종료)에


번갈아 전화하며 괴롭혔더니, 



다음날 택배 기사가 새벽 한시에 '물건을 집 앞 수퍼에 맡겨놓았다'는
문자를 남겨놓았다.



추석 전날 새벽, 술에 취해 들어와 입어본 자켓은

추석연휴에도 귀찮은 고객에게 걸려 짜증내고 있는
택배기사의 고단한 냄새가 들러붙어 있었다.




정당한 일을 했다 생각했다.
하지만 미안했다.






3. 집이 멀어 오랜만에 만나는 좋은 친구와
몇 시간동안 수다떨고 헤어지던 길.


'언제 또 널 보냐'
와락 껴안는 나의 등을 두들겨주며


'다음 달에 또 만나' 약속해 주었다.



먼 시간을 건너 내게로 와주는
그 아이의 넓은 등을 바라보며
눈물이 핑 돌았다.

 



4.또 다른 약속을 향해 걷는 홍대는
외국인들과 꼬꼬마(....)들만 모여
휑했고, 저녁 10시에 새벽 5시의 아우라를 풍기며
오랜만에 고요했다.



시간을 뛰어넘는 소녀가 된 기분이었다.





 

5. 사실 이번 추석엔 꼭 다시 기타를 잡으리라 생각했지만
실상은 차마시고, 술마시고, 술마시고, 집에 들러붙어 있었다.


아아...



엄마, 미안.

 




6. 마침 같은 길이라,
집까지 나를 바래다 줬던 분은
5년된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한 달 술값으로 400만원을 쓴다고 했다.


"그리워서 그래요?"

"그게 아니라.."

그가 다른 답을 얘기하려던 그 순간
소설처럼 택시가 집 앞에 도착했다.

 




"감사합니다"




 


7. 역시나 집이 멀어 오랜만에 만난 착한 한의사 동생은
내 진맥을 짚어주며 '오히려 몸이 좋아졌는데?'라고 말했다.
'너 야매지?'



농을 치면서도 하마터면 또 끌어안을뻔했다.





 

8. 젊은 사람들이 느끼는 해방감이
나이드신 분들께는 외로움과 같을 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엄마 아빠 죄송해요.
곧 찾아갈께요.

 






9. 10월이 되니, 어느새, 바람 차다.



무심코 언 마음으로 하늘보자
달도 차다.

곧 보일러를 올려놓고 옥장판을 켜놓는 날씨가 되겠지.

그 전에, 따뜻하게 마음을 덥혀놓자.


안 팎으로 얼어버리지 않게.

 




-kaira 719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