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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사각

시시하다고 비웃어도 괜찮아요 -27












생애 처음으로 세무사와 전화해야할지 모르는 내일.
많이 버는 것도 아닌데,
왠 세무사와의 통화? 하고 내가 제일 먼저 놀랐다.

벌써 초조해진다.

말 그대로 헛똑똑이로 살아가는 것 같은 최근.

'아는 것은 힘이다'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라는 것을 체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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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둔합니다'라고 날 소개하고 다녔는데,
스트레스에 예민해진 내 모습을 발견한다.

20대 초반과 지금을 비교하면
짜증도 늘었고, 느슨함도 늘었다.

정반대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면
내가 모순적이구나. 생각하던 마음을 버리기로 했다.

둔한것은 둔한것이고
예민한 것도 예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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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짧게 잘랐던 머리가
어깨 남짓 자랐다.

숨가쁜 일년이 지났구나.


'이제 언니 머리 한 번 해보나?'
의식하기 시작하니,
머리자라는 것이 참 더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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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만들어진 고 김기영 감독의 <하녀>라는 영화를 보고
그 기묘한 분위기에 압도 당해
오늘, 같은 감독의 1977년 작<이어도>를 보고,
'참으로 이상한 사람이다'. 만 연발하고 있다.


그 시대 영화가 보여줄 수 없던
강렬한 비주얼에 동공이 다 커졌다.

분명 호불호가 갈릴 감독이시지만
난 확실히 김기영 감독의 팬이 되었다.


내 고향 민요가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지게 만든 영화이며,
 
바다의 생명력과 욕망, 샤머니즘과 또한 번식력(보신 분들이라면 모두 납득할)이
꿈틀꿈틀대는 음기탱전한 영화다.

아, 이 영화의 참된 주제는  '자연을 보호하자' 일지도.
(역시 보신 분들이라면 납득할 주제.)












연극배우로 잘 알려져 있으신 배우 박정자씨.
이어도에서는 무녀로 등장하셔서 시종일관 오싹할 정도의 존재감을 보여주신다.




김기영감독의 영화에 출연한 여배우들은
하나같이 색기와 음기탱전하다.

'눈빛하나로 사람 잡아먹을 것 같이' 요망하면서도 또한 그렇기에 누구보다 매력적인,
생명력 넘치는 여인들.

특히 이 여배우 '이화시'는 정말 이렇게 섹시할 수 있을까 싶을정도의 음기를 내뿜으며
영화 전체를 압도한다.

이화시 라는 이름은 김기영 감독께서 손수 '‘꽃의 시작’이라는 뜻의 화시로 정해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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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엔 공포영화가 주던 그 스릴도 넙죽넙죽 잘 받아먹어놓고
나이들면서 이상하다는 B급영화의 정보량만 늘고있다.


온갖 디깅질을 통해,

일본 고어 레이블부터
작가의 사상 자체가 지독하고 짜증나서 욕지기부터 튀어나오는 만화.
30분 남겨놓고 전부 자리를 뛰쳐나간다는
한국 인디 고어 제목까지 꿰고 있지만,

(디깅질중엔 실눈을 뜨고 스틸컷들을 휙휙 넘기면서도
영화를 소개한 텍스트는 꼼꼼하게 읽고있다.)


겁 많은 나는
그 영화와 만화들을 절대 내 눈으로 볼 수 없음도 알고 있다.
또한 공포와 찝찝함이 감도는,
여운이 남는 영화는 절대 싫다.


이것은 못 먹는 감도 찔러보게 만든다는 그 감정인건가.
혹은 쓸데없는 호기심인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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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다 아는 것을 모르고,
남들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을때

그녀들이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는 일상이
나와 아주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깨달을때
느끼던 자괴감을 내버려 두기로 했다.

모두 사는 모습이 다른 것이지

누구의 잘못인것도 아니며
가지고 싶다해서 가질 수 있는 것도,
피하고 싶다해서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님을

이제야 천천히 느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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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가끔 외로울땐,
보일러를 올려놓고 다리엔 선풍기를 쐰다.

고양이들은 바닥을 구르고.

뽀송한 공기와 찬 바람이
마음을 말려준다.


그래. 누구라도 뭐 별거 있겠어?



-kaira 719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