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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흔들

그건, 마음의 우선 순위




새벽, 문자 하나를 받았다.

서운하단 얘기.
그런 일이 만약 다시 생긴다면 모른척 해달라는 부탁.

뚫어지게 바라보던 모니터를 잠시 끄고
커피 한잔 하러 나가서는
문자의 답을 꾹꾹 눌렀다.

미안하단 얘기.
오해가 있었다면 사과한단 얘기.

진실의 서운함과 상투적인 대답.
하지만 그렇게 까지 생각하진 않아도 될텐데 하는
내 마음속의 뾰족한 가시.


키패드의 따각따각한 질감이
눌러 쓰는 문자의 가벼움이
식은땀처럼 차게 느껴진다.

 

그리곤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마저 할 일을 생각해내
방금 일이 없던 것마냥 키보드를 두드린다.

 


'밤새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내 진심이 전해지지 않았더라도
내가 진실이었다면 되었다.'

'인간관계라는 것이 원래,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원래,
그렇게 맞닿아 소통이 되는 것만은 아니지 않느냐.'

스스로 자위하며 있다가

어느새 울컥
목에 덩어리가 낀다.

 


사람과 사람이 마찰하는데
왜 데미지가 없겠나

살이 닳아져 나가듯 따가운건데.

소모성 싸움이라고 해도
마음과 마음이 오가는 것인데.

내가 무뎌진 것인가.
모든 사람과의 관계에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대응할 수 있나.

 

생각해보니 다르다.

마음속의 우선순위가 달라서
그렇게 쉬워진다.


말이 쉬워지고,
마음 주는것도 버리는 것도 쉬워지고,
그러다 지워지는 것도 쉬워진다.

 

기억되고 싶다고만 생각했다.
남에게 소중한 존재이고 싶다고 느껴왔다.


상대 역시도 그렇다는 것을 알았다면
조금 더 진지하게 마음으로 받아칠 수 있었을것을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사람과 사람으로 만 되는 것이 아니지만,


우선순위가 다르다고
쉽게 생각한 것을 혼자 반성한다.

변하지도 못할거면서.

 

 


에라이, 인간아.
깨닫기만 하면 뭘 하니.

쓴 커피나 한 잔 더 마셔야겠다.

 


-kaira 7192000

 

 

*잉거마리 군데르센.
잉거마리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녀의 이름은 잉거마리 군데르센이다.

노르웨이의 재즈 싱어로 40이 넘는 나이에 첫앨범을 냈다.


마음을 깃털처럼 감싸 안는 이 목소리가 없었다면
난, 좀 더 퍽퍽해졌텐데


고맙고, 또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