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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사각

시시하다고 비웃어도 좋아요-11-




1. 병원에 와 보니 내가 늘 겪고 살던 일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온 몸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화장실에 가는 그런 아주 쉬운 일들을
하지 못해 괴로워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모든 것을 의지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리고 강한 힘인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시간들이다.



2. 동생이 다친 후 한 번도 울지 않았지만,
의식을 잃은 동생이 날 못알아 볼땐 왈칵 울음이 쏟아져 나와
병원뒤 공터에서 엉엉 울었다.
병실로 돌아온 나에게 간호사언니는
"보호자가 쓰러지면 안돼요, 보호자가 포기하면 환자는 갈곳이 없어요"라며
가만히 내 등을 쓸어주었다.



3. 병실안에 모든 사람들은 깊은 유대를 가지게 된다.
서로의 안부를 물어보고, 빨리 나으라며 쓰다듬어 주기도 한다.
그들이 지어주는 미소가, 물어주는 한 마디가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사람이 사람에게 보여주는 연민이 얼마나 큰 힘인지 알게된다.



4. 오랜만에 내려온 고향인데도 움직이는 동선은 무척 짧아서
병원, 집, 공항 밖에 다니지 못했다.
바로 곁에 있을 내 어머니 같은 바다를 아직 만나지 못했다.
가장 그립다.



5. 이제 동생은 많이 좋아졌다.
곧잘 웃고 얘기도 쉼 없고 그 좋아하는 CSI 마이애미를 곧잘 보며
밥도 잘 먹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의 일들에 대해 의논하는 도중에
나와 싸우기도 곧잘 한다.
아직 누워있어야하는 상태지만, 그것도 곧 좋아지지 않을까
아주 조심스럽게 희망하고 있다.



6. 마음이 약해져서 조그마한 일에도 쉽게 겁을먹고
조바심을 내게 된다. 나에게도 휴유증이 생겼다.


7. 사람이 사는데 필요한 것 별거 없더라.
큰 가방에 바리바리 싸들고 다녔던 소지품들은 구석에 처박아두고
병원에선 조그마한 파우치 하나 들고 동분서주 뛰어다녔다.
문득 서울에 이리저리 개켜놓은 옷과 물건들이 생각났다.


8. 난 최근 그렇게 바꾸려 해도 못했던 밤과 낮을 한번에 바꾸고
저녁 11시면 자고, 7시면 일어난다.
'난 할머니가 되도 밤늦게까지 놀고 새벽에 자고 그럴 것 같아'라고 얘기했던 것이 생각나서 좀 웃겼다.
다시 평온한 일상이 돌아오면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지만.











9. 모두에게 희망을, 모두에게 건강을.
그리고 많은 것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는 하루하루이길.

 

 -kaira 7192000


* 며칠 전 좋아하는 그룹 언더월드의 음악을 듣다보니

무척 좋아하는 다른 곡이 떠올라 함께 올려본다.
이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광분했던 것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말이지.
(그러니까 이런 무비를 올릴 여유도 생겼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