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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흔들

커피가 주는 마음.





기본적으로 방이 깨끗한 것을 좋아하지만
청소는 귀찮습니다.

맛있는 것을 먹는 일은 즐겁지만
요리하는 것은 귀찮습니다.

평범한 생활속에서 과정과 결과까지의 시간을
함께 좋아하기란 쉽지 않은 일 같아요.

귀찮은 것이 너무 많아요.

하지만 게으른 저에게도
과정과 결과까지의 시간을 고스란히
기쁘게 받아들이게 되는 일이 하나 있어요.

 

 

저희집엔 반자동 커피머신이 하나 있습니다.

보급형(전 참 보급형 좋아하는군요)커피 머신이지만
(아무리 보급형이라도 살 때는 벌벌 떨었다는...)

제게는 커피콩씨와 별다방씨보다도 더 가치있는 라떼를 만들어주는
기특한 아이입니다.


얼마 전까지는 일리에서 나온 포드 커피로
집 커피를 인스턴트처럼 내려 마시곤 했는데,

말 그대로 옛날 주택가 같은 집 앞에
언발란스하게도 전문적으로 커피를 만들고 볶는 커피집
<도깨비 커피집>이 생긴후로

그 곳에서 볶아 숙성된 커피콩을 사다가
에스프레소를 내리고 스팀 거품을 만들어
라떼를 만들어 청소하고 마시기까지의 시간을
나름 즐기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실수도 많이하고 생각보다 맛없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니 나아지더군요.
뭐 다 그렇듯 말이죠.

커다란 머그컵에 찰랑찰랑한 커피를 흔들며
방안 가득한 커피 향기를 맡을때면
'나도 참 괜찮은 여자야'라는 착각이 들기도 합니다.

커피 말고는 또 뭐가 있을까요?
화장? 기타 연습? 찾아보면 꽤 많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제게 일상이라는 모습은
대 다수의 일이 귀찮음과 범벅되어 오묘한 맛이 납니다.


후루야 미노루의 만화 그린힐의 마지막 장면처럼
인류 최대의 적인 '귀찮음'과 싸워 이겨야 할텐데,

그것이 어째 저에겐 인간관계의 피곤함보다
갈수록 더 막강하고 무서운 존재입니다.

 


커피를 홀짝홀짝 마시며 생각합니다.


'일상의 과정들이 다 놀이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아니 그냥 나, 좀 부지런했으면'

 

그런데 그게 쉽지 않아요.

귀찮은 것은 늘 힘이 세니까.

 

아, 커피 한 잔 더 마셔야겠습니다.

 

 


-kaira 7192000

 


참 뻔한 표현이지만
커피라는 말에는 작은 마법이 숨겨진 것 같습니다.

추운 날에도 힘을 나게 하며
늘어진 츄리닝을 끌어올리며 마셔도
한 모금 마시면 그 순간만큼은
행복한 기운이 올라오는 것 같습니다.


참,

위에서 집커피 예찬을 좀 한거 같은데,
또 딱히 그렇지 만은 않아요.


부록)

커피를 집에서 만들게 되면 발생하는 부작용들.

1. 집 바깥으로 외출이 뜸해지기 시작한다.
2. 카페에서 뭘 마시는 돈이 아까워진다.
3. 커피 과다복용
4. 결국 얄팍한 인간관계는 유리장보다도 더 얇아지고,
외로운 찌질씨의 길은 가까워진다.

= 더 게을러진다.

 

뭐든 한 쪽만 보기는 쉬운 일이니 잘 조절해서
명랑 라이프 이룩하죠.

 


덧2)
흐르는 노래는 프랭크 시나트라의 Fools Rush In 입니다.
프랭크 시나트라라는 분 자체도 굉장하지만
이 노래는 특히 빈센트 갈로의 영화 '버팔로 66'에서 빛을 발하죠.
시간될때 찾아보세요, 좋거든요.

귀찮으면 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