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엘리스레지나

(2)
웃는다, 웃어야 하기에-심보선 Elis Regina - O Bêbado e a Equilibrista (술 취한 사람은 곡예사) 웃는다, 웃어야 하기에 심보선 1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래 이 집안에 더 이상 거창한 이야기는 없다 다만 푸른 형광등 아래 엄마의 초급영어가 하루하루 늘어갈 뿐 엄마가 내게 묻는다, 네이션이 무슨 뜻이니? 민족이요, 아버지가 무척 좋아하던 단어였죠 그렇구나 또 뭐든 물어보세요 톰 앤드 제리는 고양이와 쥐란 뜻이니? 으하하, 엄마는 나이가 드실수록 농담이 느네요 나는 해석자이다 크게 웃는 장남이다 비극적인 일이 다시 일어난다 해도 어디에도 구원은 없다 해도 나는 정확히 해석하고 마지막에는 반드시 큰 소리로 웃어야 한다 장남으로서, 오직 장남으로서 애절함인지 애통함인지 애틋함인지 모를 이 집안에 만연한 모호한 정..
이 책- 김행숙 이 책 김행숙 낭독을 하겠습니다. 나는 이 책의 저자를 알지 못하지만, 킁킁 짐승의 냄새를 맡듯이 책의 숨소리, 문체를 느낄 때. 내가 이 책을 쓰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 책 뒤에 숨겨진 사랑을 내가 은신시켰다고 생각해요. 아아, 나는 사랑 없이 단 한 문장도 쓰지 못해요. 바람에 맡겨진 나뭇잎 같은 마음으로 낭독을 하겠습니다. 익사하려는 사람이 서서히 잠수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고개를 숙이며 낭독하겠습니다. 익사하려는 사람이 갑자기 허우적거리는 마음으로, 그렇게 머리를 쳐들며 낭독하겠습니다. 이 책을 부정하고, 강하게 부정하는 마음으로 낭독하겠습니다. 나는 한 글자 한 글자 녹일 듯이 뜨거운 목소리를 냅니다. 목소리에게 허공은 펄럭이는 종이입니까. 내 목소리도 하얗고 허공도 하얗습니까. 목소리는 허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