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흔들흔들

붉다.




누구에게나 붉은 립스틱에 대한 기억은 존재한다.

동네마다 붉은 입술을 가진
아주머니가 존재했고

색을 알아볼 수 없는 흑백영화에서도
'저 여자의 입술은 붉을 것이다' 어림짐작되는 여성이 존재했다.

 








붉은 입술을 가진 여자는
팜므파탈 같았다.

당당하고 음흉하며
치명적이었던 그녀들은
내게 언제나 동경과 금기의 대상이었다.

 








내가 열 일곱살때 처음 산 색조 화장품은
붉은 립스틱이었고.
아주 가끔, 가족이 깊은 잠에 빠진 틈을 타
비투르게 발라보고
거울에 입술을 삐죽이며 확인하고는
지우기가 아까워 노트에 내 입술자국을 내보곤 했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

붉은 입술이 어울리는
그런 여자가 되고 싶다고 웅얼거렸다.

 

하지만 스무살이 넘어서도
한번도 떳떳하게 붉은 립스틱을 바르거나
새빨간 입술을 가진채
거리를 활보하지 못했고,
 

그런 여성이 내 곁을 지나가면
동경과 이질감으로 뒤를 돌아보곤 했다.

 

 

 

 

 

 

 

 

더 이상은 팜므파탈의 꿈을 꾸지 않는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유연하고 부드러우며 따뜻한,
부러지지 않는 말갛고 빨간 심장을 가지고 싶다.

 

 

입술이 아닌
심장에 붉은 색을 칠하고 싶다.


입술을 따라 움직이는 말이,
머리와 심장에 도는 색이.

흑백영화속에서도
색을 알 수 있었던 그녀들처럼.

 










붉은 색은
열정의 색이며
도발의 색이며
금지의 색이고,

내 심장을 도는
따뜻한 피가 지닌 색이다.

 

 

 




-kaira 719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