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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흔들

지상의 양식







나는 너무 많은 쌀과 너무 많은 푸성귀를 먹어버렸다

나는 너무 많은 사람의 이름과 너무 많은 짐승의 이름을 알아버렸다

 


모든 길은 내 걷기엔 너무 멀고

모든 산은 내 오르기엔 너무 멀고

아, 나는 숭고와 심원에 등한했구나

 


육체가 남루해질수록 정결해가는 정신의 영토는 어디 있는가

물의 몸이 무거워 나는 민들레 꽃씨처럼 날아갈 수 없다

 


내 마지막 닿을 집은 마른풀의 향기라고

가장 향기롭게 살다간 사람의 이름 앞에 묵념하겠다고

정맥만큼 가쁘게 뛰어온 생애

 


내 어지러운 생각이 금결이 되는 날

나무여, 나도 적도 없이 그 살 속을 지나는 모든 것

보석이 되게 하는 힘을 가르쳐다오


-이기철 <지상의 양식>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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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는 행동과 생각이
이렇게 하찮아 보이는 날에

가만히 읽어내린다.


화려한 미사여구 없이,
꾸밈 없이, 홀림 없이, 미움도 음모도 없이.






-kaira 719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