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각사각

시시하다고 비웃어도 괜찮아요 -22








-

1월 1일 밤,
엄마가 전화했다.

약간 달뜬 목소리로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기분이 좋아서 술을 좀 마셨다고.

난 입가를 활짝 올리고는
소녀같은 엄마를 위해 애교를 떨었다.

그리고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내 진심과 온 마음을 다해 말했다.

늘 무뚝뚝한 엄마는 짧게 '나도' 라고 얘기했다.

 


--

새벽 세 시.
국제 전화번호가 떳다.
스팸전화가 극성이라 겁을 잔뜩 집어먹었고
이 시간에 국제 전화를 할 정도로
나를 잘 아는 사람이 있나, 하고 조금 망설였다.

두 번 길게 울리는 전화를 받자
저 먼 곳의 목소리가 나를 반긴다.

스무살이 좀 넘으면서부터
오랜 시간 나와 함께 했던 내 소중한 언니, 그녀는.

6년 전부터 텍사스에 새 살림을 꾸렸다.

미국에 살면서 미국 사람들과 어울리고
늘 총을 소지해 다닌다는,
그것도 이젠 아무렇지 않다는 언니는.

최근 한국이 그립단다.
김현중이 좋단다.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고민도 한단다.
내게 뜨겁던 사랑이 있었나 고민도 했단다.
옛날처럼 끈질기고 지독한 사랑이 하고 싶단다.

한 시간 남짓 전화하며
페이스북을 꼭 만들라고,
거기서 안부라도 전하자며
꼭 만들라고 재차 말하던 그녀는,

여름에 한국에 오겠다며 전화를 끊는다.

전화를 끊고나니 더 그립다.

그 시절도, 그녀도 보고싶다.

 

---

눈이 내려 세상이 하얗게 변하니,
고향에서 하얀 눈에 우유와 설탕을 타 먹었던 기억이 났다.

그 생각뒤에 눈들을 보니,
침이 고인다.

서울의 눈은 먹으면 
위 아래로 쏟아내겠지, 아마.

------

눈발이 나리는 밤은
고요하고 아름답다.

몇해 전 삼촌이

"네 이름의 뜻을 아니?
네 이름은 할아버지랑 내가,
이 세상의 모든 소리를 덮으라고 만들었어" 
하고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아무리 봐도
그 시절 삼촌은
무협지에 빠져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아니, 그럼
나를 아끼고 사랑해 주셨던...
내 소중한 할아버지는?


죄송해요, 할아버지.
저 올해는 열심히 살겠습니다.


이름 값 하기 위해 조금이나마 노력하는 손녀딸이 될께요.


------------






며칠 전 눈이 하얗게 내린 날.
뒤뚱뒤뚱거리며 교보에 갔다.

바닥에 철퍽 앉아서 이 책 저책 뒤적이다가
시집을 하나 샀다.
베스트셀러들의 뒷장을 넘겨
몇 판 인쇄인가 들여다보기도 했다.

핫트랙스에 진열되어 있는 새 CD들도 훓어보고
서서 들어보기도 했다.

한 것 아무 것도 없이
무엇인가 배운듯

쓸데없는 충만감이 몰려왔다.

'올해는 자주 교보에 와야지.'
또 마음속으로만 지껄여본다.

-----------

새해에는
 '미뤄두었던 영화들을 찾아봐야지' 하고
작심삼일 격으로 찾아 본 영화는 1961년 작
고 김기영 감독의 '하녀' 
(스포일러 다량투여 블로그이니, 참고 하실분만 누르실 것. 읽고 봐도 상관은 없습니다.
영화 자체가 상당히 기묘하니까요.)

신년부터 보는게 스릴러 영화냐! 라고 묻는다면
대답할 말은 없지만,

영화를 잘 알지못하는 내가 보기에도
무척 재미있는 영화였으니,

김기영 감독을 알고 계셨던 분들이라면
한 번 쯤 보길 권한다.

영화를 다 보고 검색질을 좀 했더니

곧 전도연, 이정재, 서우 주연으로
리메이크 된다고.


--------------

요즘 색소폰 레슨이 줄었다는 친구에게
"그래도 음악하는 사람은 계속 늘잖아.
그런데 그 사람들이 모두 음악하는건 또 아니고...
너에게 레슨 받았던 그 많던 학생들은 지금 뭐할까?"하고 물었더니


"뭐, 음악은 안해도 뭐든 하겠지"라 대답한다.

응, 맞다.
뭐든 하고 있겠지.

-----

 

새해를 맞아
몇 개의 계획을 세웠다.

남사스러워 말 못할 것 들과
곧 작심삼일 될 것들이라
차마 올리지는 못하겠지만,

은근히 다 잘되기만을 바라고 있다.


모든 분의 계획과 소원 역시도

누군가에게 폐가 되지 않는 한에서
모두 은근히 잘 이루어지기를 바라게 된다.


------


전 올해에도
꽃 같은 남자들을 향한
하악질 + 디깅을 하고

또, 세상 살아가는 낙을 좀 많이 만들고
여전히 좀 바보같이 살아가겠습니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kaira 7192000*



 


+새해 첫 포스팅 곡은
너무나 낭만적인 조월의 사랑노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