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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흔들

외할머니.





외할머니는 라면을 '삶아먹는다'라 표현하셨다.

비빔면 하나 삶아먹은 밤.
참외를 된장에 푹 찍어 밥 반찬으로 올려주셨던 외할머니가 떠올랐다.

 

배가 고파질 땐 할머니를 기다렸다.
농사일을 마치고 오신 할머니는
집앞 아주 작은 텃밭에서 상추 몇개 탈탈 털어다가
밥상에 올리곤 하셨다.

낡은 스뎅 밥그릇과
급하게 만든 된장국으로 만든
단촐한 상차림.

할머니는 늘 없는 찬거리로도
맛있는 밥을 만드는 법을 알고 계셨다.

먹다 남은 수박의 흰부분과 참외,
노란색 흐드러진 유채꽃 밑둥도
할머니의 손에선 맛있는 밥상이 되었다.


아주 가끔 엄마는 할머니 얘길 하신다.
죄송하다고. 묘소에 다녀오고 싶으시다고.




어깨 처진 사위와
아직 어린 넷째 딸.
그리고 밑에 딸린 두 손녀의 새같은 눈망울을 보며

할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할머니들의 수다가 듣기싫어서
늘 작은 골방으로 숨어 들어가던 그 손녀를 보며

할머니는 또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동네 할머니들에 비해 큰 키를 자랑하셨던.
모진 세월 살아오시면서도 허리 굽지 않던 여인.

저녁이 되면 깨끗하게 비워진 재털이에
솔담배 톡톡 털어내시며
다음날을 준비하셨던 여인.

 


그 손녀가 이제서야 가끔씩
할머니 생각한다고 하면

또 무어라 얘기하실까.








-kaira 719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