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함의 세계
-김행숙-
이곳에서 발이 녹는다
무릎이 없어지고, 나는 이곳에서 영원히 일어나고 싶지 않다
괜찮아요, 작은 목소리는 더 작은 목소리가 되어
우리는 함께 희미해진다
고마워요, 그 둥근 입술과 함께
작별 인사를 위해 무늬를 만들었던 몇 가지의 손짓과
안녕, 하고 말하는 순간부터 투명해지는 한쪽 귀와
수평선처럼 누워있는 세계에서
검은 돌고래와 솟구쳐 오를 때
무릎이 반짝일 때
우리는 양팔을 벌리고 한없이 다가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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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에 그토록 바라던.
주저 앉아 책을 볼 수 있는 서점이 생겼다는 말에
선물 받은 도서상품권을 들고 터덜터덜 걸어갔다.
서점엔 특유의 책 냄새가, 사람들의 체취와 섞여
기묘한 향내가 났다.
그 사이에 비집고 기어들어가
몇 권의 시집을 쌓아놓고
맨살을 맞대며 콧물을 훌쩍이고는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또 김행숙 시인에게 발목을 붙잡혀
'다정함의 세계'를 응시했다.
요 며칠 아무 생각도 안하려 노력하고
또 어떤 생각들에 사로잡혀 둥둥 떠다니기도 했다.
나도 차라리 그 속으로 완전히 숨어 들어가
뼈채로 녹아버렸으면 좋았을것을.
끝까지 빠져들지 못하여
가슴을 오고 가는 따뜻한 말 사이에서 살아남았구나.
손가락으로 뱅뱅 원만 그리다 돌아온다.
다정함이 쿵 내리찍었다.
무겁게 쌓여 가라앉았다.
다시 가벼워지기까지,
어느정도의 시간이 필요한걸까.
-kaira 719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