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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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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하다고 비웃어도 괜찮아요-13- 1. '블로그에 이런저런 말을 잔뜩 써놓자.' 뭐든 써보자, 라고 생각해 놓고 다 까먹었다. 아, 인생. 역시 블로그 같은 것은 아무나 할짓 아냐. 블로그 앞에 '파워'라는 이름이 붙는건 다 이유가 있던거야. 2. 추석 전에 시켜놓은 가을 자켓이 배송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배송 완료 '본인'이라고 찍혀 있었다. 어안이 벙벙하여 판매자(운송장 번호를 알려주며 걱정했다), 택배기사(하루종일 전화기를 꺼 놓고 있었다), 택배회사(추석 연휴라고 업무종료)에 번갈아 전화하며 괴롭혔더니, 다음날 택배 기사가 새벽 한시에 '물건을 집 앞 수퍼에 맡겨놓았다'는 문자를 남겨놓았다. 추석 전날 새벽, 술에 취해 들어와 입어본 자켓은 추석연휴에도 귀찮은 고객에게 걸려 짜증내고 있는 택배기사의 고단한 냄새가 들러붙어 있었다..
시시하다고 비웃어도 좋아요-12- 1. 동생과 함께 물고 뜯고 싸우며 살고 있다. 새벽 11시(아침아님)에 끙끙 일어나 병원을 가기도 하고. 다른 옷을 같은 시간에 지르기도 하고 때로는 화장실 벨브를 내렸네, 안내렸네 따위의 말로 서로에게 말그대로 '빈정' 상하곤 한다. 다시 일상으로 조용히 안착 했다. 마음이야 나중에 생각하자고. 2. 고양이들도 물고 뜯고 싸우며 살고 있다. 똘망똘망한 눈을 가진 네마리의 새끼고양이들이 서로를 할퀴고 우리를 할퀴고 바닥을 할퀴는 것을 보면 이제 이 아이들을 보내는 것이 좀 망설여지지만, 모두 자신의 자리가 있다면. 저 아이들에게 그 곳은 이 집은 아닐거라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그러니 이 아이들의 그 '장소'가 되어주시지 않겠습니까? (공익광고같지만 진심) 3. 최근 집에선 주로 트로트를 흥얼거리고 있..
시시하다고 비웃어도 좋아요-11- 1. 병원에 와 보니 내가 늘 겪고 살던 일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온 몸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화장실에 가는 그런 아주 쉬운 일들을 하지 못해 괴로워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모든 것을 의지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리고 강한 힘인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시간들이다. 2. 동생이 다친 후 한 번도 울지 않았지만, 의식을 잃은 동생이 날 못알아 볼땐 왈칵 울음이 쏟아져 나와 병원뒤 공터에서 엉엉 울었다. 병실로 돌아온 나에게 간호사언니는 "보호자가 쓰러지면 안돼요, 보호자가 포기하면 환자는 갈곳이 없어요"라며 가만히 내 등을 쓸어주었다. 3. 병실안에 모든 사람들은 깊은 유대를 가지게 된다. 서로의 안부를 물어보고, 빨리 나으라며 쓰다듬어 주기도 ..
시시하다고 비웃어도 좋아요-10- 1) 여동생을 데리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딴에는 추천한 곳도 많았고 처음 가 본 곳도 많았다. 돌아다니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잠깐 잊고 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봤다. 가던길만 가고 보던것만 보고 먹던 것만 먹다보니. '봄'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것'은 단어로만 존재한다. 반성하자. 1-1)동생과 함께 바우터하멜의 콘서트에 다녀왔다. (동생은 바우터 하멜이 누구냐며 별 관심을 보이지 않다가 뮤직비디오 영상 두개를 보여주었더니 동행을 약속했다. 훈남의 힘이란!) 공연 막바지에 그와 손 한 번 잡아보려 무대 앞으로 몰려간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맥아리를 못추리고 나왔는데 오늘, 회사에 출근하자 콘서트에서 다른 자리에 앉아있던 분이 내가 무대 앞으로 제일 먼저 튀어 나갔다고 얘기 해 줬다. 억울해요! 난 그저 ..
시시하다고 비웃어도 좋아요-9- 1> 파묻히는 기분이 극에 극을 달려서 이번 금요일엔 드디어 머리를 잘랐다. 워밍업하는 기분으로 조금 잘랐을 뿐인데도 기분이 훨씬 나아졌다. 조금의 변화로도 좀 나아지는 기분이라니, 지조가 없군. 아니, 사실은 그렇게 물고 늘어질 기분이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네. 언제까지 이럴지는 모르겠지만. 2>사랑스러운 친구 진진이 사는 스튜디오에서 열리는 벼룩시장에 놀러가(여름 한철 반짝 하는) 비비안 웨스트우드 가방을 (그것도 정품을!) 3만원에 겟 했다. 누가 들으면 말도 안되는 소리라 하겠지만 그 벼룩시장에선 그것도 가능하다. 그래서 기분이 더 좋아졌다. 역시 남자는 자동차. 여자는 가방이라 말하던 그 우스갯 소리가 반 이상 맞는 소리란 말인가......아, 조금 부끄러워진다. 2-1>벼룩시장을 무척 좋아한다. ..
시시하다고 비웃어도 좋아요-8- 1. 별것 아닌 일들이 상처가 되어 제 가슴을 푹푹 찌른다. 생각하는 것이 모두 전쟁이 되어 내내 불안함에 시달렸다. 무엇이 문제인가 곰곰하게 생각하다가 모든 의문들이 답이 되어 돌아온다. 하나같이 찌질하고 사소한 것들이라 차마 열거하기 남루한 그리고 초라한, 보고 싶지 않은 내 모습들. 아, 부끄럽다. 절대 쿨할 수 없는 나. 그리고 벌써 밝아오는 새벽. 2. 동생이 온다. 자주 들낙날락 하는 동생이지만, 오면 반갑고, 그러다 싸우고, 헤어지면 먹먹하다. '만약 너라는 사람을 사회에서 만났더라면 절대로 친해지지 않았을텐데' 라고 얘기했었지. 말하는 것부터 좋아하는 것까지 전부 다른 너와 나. 어쩌다 너같은 아이와 피를 나누고 또 자매라는 이름으로 얽혔을까? 그런데 왜 나는 너를 사랑하고 있을까? 3. ..
시시하다고 비웃어도 좋아요-7- 1. 봄 꽃이 좋다지만 늦게 일어나는 사람에겐 그저 먼 얘기. 창문 밖에 만개한 봄을 바라보는 것은 느끼는 것일뿐. 행동하지 않는 자에겐 봄도 그저 그 곳에 있는 무드와 풍경일 뿐이다. 2. 주말, 자고 있는 나를 방안에서 끌어낸 친구와 햇빛 따사로운 홍대 거리를 돌며 쇼핑을 했다. '나 며칠 전에도 뭔가 사지 않았나?' 데자뷰가 따로 있나. 2-1. 친구가 옷을 고르며 묻는다. "옷장 안에 옷은 많은데 자꾸 사게 되네" "봄 이잖아." 스스로 좀 멋있는 답변이라 생각했지만 지갑이 알아줄 리 없다. 2-2. 친구가 남색에 분홍빛이 곱게 들어간 가디건을 골랐다. "작업복이야. 그 작업 말고, 그 작업. 나 좋아하는 사람 생겼어." 난 구조적으로 굉장히 독특한 배기팬츠를 골랐다. 친구가 멋지다며 좋아한다. ..
시시하다고 비웃어도 좋아요-6 1. 홍대에서 집까지 오랜만에 걸어 돌아오는 밤 길. 예전에는 그렇게 쉽게 걷던 길인데, 오늘은 음악을 내리고 주변을 살피기 바쁘다. 후다닥 걸어 집으로 돌아와서야 마음을 내려놓고 느슨해진다. 나이 먹기 시작하면 밤길도 무섭고 공포영화도 무섭고 놀이기구도 못타게 된다던데. 다른것은 몰라도 놀이기구를 못탈까봐 무척 슬프다. 1-2. 바삐 오는 길, 주차해 있던 까만 경차 안에서 한 남자가 '아가씨, 마포구청이 어딘가요?' 라고 묻길래 돌아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몰라요' 대꾸했다. 10년전에 당했던 빨간 프라이드의 변태아저씨의 악몽이 떠올랐다. 어쩜 수법은 변하지도 않고 늘어만 가냐. 이럴때는 여자라는 것이 참 무서워. 1-3.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데 호리호리한 남자아이가 내 앞을 스쳐 가기에 후다닥 뒤를..